나는 망하지 않기 위해 도쿄에 갔다
나는 망하지 않기 위해 도쿄에 갔다
7박 8일의 도쿄는, 이상하게도 "여행"이라기보다 "정리"에 가까웠다.
연말이라는 시간은 늘 그렇다. 무엇인가를 새로 시작하기엔 피곤하고, 그렇다고 지나간 시간들을 덮기엔 마음이 복잡하다. 내 안에는 올해를 평가하려는 목소리와, 평가 자체를 미루고 싶은 목소리가 동시에 있었다. 그래서 도쿄를 택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도쿄는 언제나 정돈되어 있고, 그 정돈된 도시를 걸으면 내 마음의 어지러움도 조금은 정리될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돌아와서 알게 됐다. 나는 내가 왜 자꾸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지 깨닫기 위해 도쿄에 간 것이었다.
능력이 부족해서도, 기회가 없어서도 아니었다. 불안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불안을 견디지 못해 서둘렀고, 서두르다 보니 선택을 망쳤다. 이 여행은 쉼이 아니라, 그 사실을 더 이상 외면하지 않게 만든 시간이었다.
1) 왜 어떤 곳은 오래 버티는가
도쿄는 예상대로 정돈되어 있었다.
지하철은 정확했고, 표지판은 친절했고, 사람들은 서로에게 직접적으로 친절하진 않더라도 최소한의 규칙을 지키며 부딪힘을 줄였다. 놀라웠던 건, 그 '정돈됨'이 속도와는 다른 종류의 안정이라는 점이었다. 빠르기 때문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느낌.
거리와 사람, 시간의 흐름까지도 과장되지 않았다. 이 도시는 빠르지 않았지만 쉽게 무너지지 않아 보였다. 누군가가 이 도시를 만들 때 "어떻게 더 빨리 달릴까"보다 "어떻게 오래 버틸까"를 더 먼저 고민한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 차이가 궁금했다. 왜 어떤 곳은 늘 바쁘고, 어떤 곳은 오래 버티는가. 그 질문을 품은 채 걷다가, 여행 중반쯤 계획 없이 센소지에 들렀다
2) 가볍게 뽑은 흉
아사쿠사의 공기는 관광객의 소리로 가득했고, 나 역시 그 많은 사람들 중 하나였다. 가미나리몬 앞에서 사진을 찍고, 나카미세 거리를 지나 본당 앞에 섰다. 향 냄새가 은근하게 감돌고, 사람들이 손을 모으는 장면이 반복되었다.
그 순간 나는 이상하게 '의미'를 찾고 싶어졌다. 종교적 확신이 있어서가 아니라, 연말의 공기 속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느끼는 종류의 마음 "나는 잘 가고 있나?"라는 질문때문이었다.
그래서 운세를 뽑았다. 가볍게. 정말 가볍게.
여행 중 흔한 이벤트, 재미 삼아 하는 의식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종이를 뽑아 펼치는 순간, 나는 일본어를 거의 읽지 못한다는 사실을 바로 깨달았다. 한자와 히라가나가 섞여 있었고, 나는 몇 글자만 간신히 알아볼 뿐이었다.
한국인이 일본의 사찰에서 오미쿠지를 뽑아놓고, 내용을 읽지 못해 멈춰 서 있는 장면. 나는 결국 휴대폰을 열어 GPT에게 물었다. "이거 해석 좀 해줘." 낯선 언어 앞에서 멈칫한 내가, 익숙한 방식으로 도움을 청한 셈이었다.
답을 받았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한 글자였다.
凶.
흉.
순간 피식 웃음이 나왔다. 연말 여행 중에 '흉'이라니. 꽤나 영화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GPT가 전체를 풀어주면서, 나는 종이의 내용을 단순한 미신이 아니라 내 상태를 설명하는 문장으로 읽기 시작했다.
3) 조급함을 경고하는 네 가지 문장
처음엔 연말에 어울리지 않는 결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문장들은 미래를 예언하지 않았다. 대신 지금의 나를 정확히 설명하고 있었다.
閑事意風騒 — "별일 아닌데도 마음이 소란하다"
첫 문장은 "한가한 일에도 마음이 바람처럼 소란하다"는 뜻으로 풀이되었다.
나는 그 문장을 읽고 멈췄다. 왜냐하면 정확히 그랬기 때문이다. 도쿄까지 와서, 바쁘게 달릴 이유가 없는 상황에서도 내 마음은 늘 바빴다. 쉬고 있어도 쉬지 못했고, 아무 일도 없을 때 오히려 더 불안해졌다.
가만히 있으면 뒤처질 것 같았고,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 시간이 손해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필요하지 않은 선택까지 만들어냈다. 문제는 현실이 아니라, 내 마음의 소음이었다. 문제는 상황이 아니라, 불안을 견디지 못하는 태도였다.
重憂心緒亂 — "근심이 겹쳐 마음이 어지럽다"
다음 문장은 더 정확했다.
내 근심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겹이었다. 겹겹이 쌓인 걱정은 "해결해야 할 과제"라기보다 "대기 중인 불안"처럼 존재했다. 그리고 그 불안은 나를 조급하게 만들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보다,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나는 늘 한 번에 하나만 걱정하지 않았다. 여러 가능성을 동시에 붙잡고 있었고, 그 결과 어떤 선택도 끝까지 책임지지 못했다. 깊이 파지 못한 이유는 환경이 아니라, 머무르지 못하는 성격 때문이었던 것 같다.
飛鴻落羽毛 — "멀리 날려다 깃털을 잃는다"
세 번째 문장은 한 번 더 강했다.
"날던 기러기가 깃털을 잃고 떨어진다." GPT는 이것을 "잘 나가던 흐름이 작은 실수로 꺾일 수 있다"는 뜻으로 풀어줬다. 여기서 나는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두려움이라기보다, 인정에 가까운 감정.
나는 늘 한 번에 멀리 가고 싶어 했다. 빨리 증명하고 싶었고, 빨리 의미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가끔 스스로가 잘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동시에 "작은 실수 하나로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갖고 있었다. 그래서 더 서둘렀다. 더 멀리 날아가려 했고, 더 빨리 결과를 만들려 했다.
하지만 그 욕심 때문에 준비되지 않은 선택을 반복했고, 실패보다 마모로 지쳐왔다. 그럴수록 깃털이 먼저 상한다는 말은 잔인하게도 진실에 가까웠다. 나는 큰 실수로 무너지는 사람이 아니라, 작은 무리의 반복으로 서서히 마모되는 사람일 수 있었다. 큰 실패로 무너지는 사람이 아니라, 작은 무리의 반복으로 닳아가는 사람이었다.
水帶少波濤 — "물은 있으나 파도는 없다"
마지막 문장은 이상하게 차분했다.
겉으로는 조용하지만 속에는 불안 요소가 있다는 뜻, 혹은 지금은 큰 흐름이 생기지 않는 시기라는 뜻으로 풀이되었다. 그리고 그 말이 내게는 이런 문장처럼 들렸다.
"지금은 파도를 만들려고 애쓰기보다, 흐름을 기다리고 정리할 때다."
지금은 흐름이 없는 시기라는 뜻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자꾸 파도를 만들려 했다. 흐름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정하지 않아서 더 불안해졌다는 사실을, 이제는 부정할 수 없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종이를 다시 내려다봤다.
이 운세는 "너는 불운할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너는 지금 흔들리고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더 정확히는, 흔들림 자체보다 흔들림을 다루는 방식이 문제라고 말하는 듯했다.
마음이 흩어져 있고, 근심이 겹쳐 있고, 무리하게 날려 하고, 흐름이 없는데도 파도를 만들려 한다. 이것은 미래의 예언이라기보다, 내가 자주 저지르는 선택의 패턴이었다.
이 흉은 위로가 아니었다.
"지금처럼 가면 언젠가 반드시 망가진다"는 경고였다.
4) 관계에서도 같은 패턴을 반복했다
그 경고는 일에만 해당되지 않았다. 그 패턴은 일에서만 나타나지 않았다. 사람을 대할 때도, 관계를 이어갈 때도, 때론 사랑 앞에서도 나는 비슷한 태도를 반복해왔다.
마음이 흩어져 있을 때
마음이 흩어져 있을 때, 나는 사람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상대의 말을 듣기보다 다음 말을 준비했고, 관계 그 자체보다 그 관계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부터 계산했다. 이 상태에서의 친절은 온전하지 않았고, 관심은 쉽게 변했다.
조급했던 관계들
관계에서도 나는 조급했다.
빨리 가까워지고 싶었고, 빨리 확신을 얻고 싶었다. 빨리 친해지고 싶고, 빨리 의미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친밀함은 밀어붙여서 생기지 않았다. 친밀함은 밀어붙일수록 부담이 되었다. 조급한 호의는 부담이 되었고, 빠른 기대는 실망으로 돌아왔다.
상대의 속도를 존중하지 못한 순간들, 내 불안을 달래기 위해 상대에게 대답을 요구했던 순간들, 흐름이 자연스럽지 않은데도 "지금 정해야 한다"고 느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흉의 말처럼, 급하면 반드시 탈이 난다. 관계에서 속도를 줄인다는 것은 거리를 두겠다는 뜻이 아니라, 상대의 속도를 존중하겠다는 선택이었다.
파도를 만들려 했던 순간들
사람 사이에도 흐름이 있다.
대화가 자연스러울 때가 있고, 괜히 어색해지는 시기가 있다. 그 흐름이 없을 때, 나는 자주 의미를 만들어내려 했다.
하지만 흉은 분명했다. 파도가 없을 때는 파도를 만들지 말라고. 기다림이야말로 가장 성숙한 태도일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자주 잊고 있었다.
결국은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조급함은 추진력이 아니라 균열이다."
5) 그날 이후 달라 보인 도쿄
정돈된 거리는 단순히 깨끗해서가 아니라, 마찰을 줄이기 위해 설계된 것이었다. 오래된 가게들은 단골과 관계로 버티고 있었다. 빠른 혁신 대신 안정적인 지속을 선택하는 듯한 장면들이 자주 눈에 들어왔다.
도쿄는 어쩌면, 내가 연말마다 갖게 되는 불안 "더 빨리 증명해야 한다"와 정반대의 방향에서 성립하는 도시였다. 그리고 그 대비가 내게 이상한 위로가 되었다. 속도를 내지 않아도, 시스템이 있으면 오래 갈 수 있다는 사실.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떠올리는 이유도 결국 비슷했다. 승리의 순간보다, 붕괴를 피하는 구조를 먼저 만든 사람. 불안한 시대를 '버티는 시스템'으로 통과한 사람.
6) 센소지에 묶어둔 것
센소지에서 나는 그 흉을 묶었다.
'흉만 묶어 주세요'라는 안내 문구가 있었고, 나는 그것이 단순한 미신이 아니라 상징적 행동이라는 걸 알게 됐다. 불운을 떼어내는 의식이라기보다, 나의 조급함과 불안을 여기 두고 가겠다는 선언이었다.
이 여행은 나에게 새로운 답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내 안의 질문을 조금 더 정직하게 볼 수 있게 됐다.
"왜 나는 자꾸 서두르는가?"
"왜 나는 흐름이 없는데도 파도를 만들려 하는가?"
"왜 나는 멀리 날려다 내 깃털을 먼저 소모하는가?"
올해의 나는, 이기려다가 망하는 선택을 할 뻔한 순간들이 많았다. 진짜 중요한 건 "이기는 방법"이 아니라 "망하지 않는 방법"이었는데, 그걸 잊고 있었다.
7) 이제 다른 질문을 한다
이제 나는 선택 앞에서 다른 질문을 하려고 한다.
"이길 수 있는 선택인가?"가 아니라
"이 선택이 나를 망하게 할 가능성은 없는가?"를 먼저 묻는다.
불안해서 움직이지 않고, 조급해서 결정하지 않기로 한다. 나는 더 많은 기회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아니라, 덜 흔들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는 더 잘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덜 망하기 위해 멈출 줄 알아야 한다.
도쿄에서의 연말은, 결국 이것으로 정리된다.
이기는 법을 배우기보다, 망하지 않는 법을 기억하는 것.
일에서도, 관계에서도, 사랑에서도.
그리고 그 멈춤은 패배가 아니라, 다음을 가능하게 하는 선택이다.
그래서 나는 이 여행을 '관광'으로 기억하지 않으려 한다.
센소지에서 가볍게 뽑은 흉이, 내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던 불안과 방황을 꺼내 보여줬다. 그것은 불쾌했지만 정직했고, 그래서 의미가 있었다. 연말에 내가 얻은 건 길한 예언이 아니라, 더 오래 가기 위한 경고였다.
그리고 그 경고를 나는, 기꺼이 믿기로 했다.
그 기준 하나만으로도,
이 7박 8일은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