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굿닥 출신이 똑닥 『B밀의숲』을 읽고
김형석대표님이 비브로스(서비스명 똑닥)에 계시면서 구성원들에게 나눴던 글들을 묶어 『B밀의숲』이라는 책을 출간했다는 소식을 듣고 예약구매를 했는데, 이번주 토요일에 배송받자마자 바로 읽어봤습니다.
읽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같은 병원 접수·예약 도메인에 있었던 사람으로서의 묘한 공감과 반가움 그리고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제가 굿닥에 다닐 때는 자본 시장의 분위기가 지금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회사의 이익도 중요했지만, 더 큰 화두는 서비스의 성장이었습니다. 트래픽과 트랙션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
- 접수, 예약, 비대면 진료가 가능한 병원을 어떻게 늘릴 것인가.
- 그중에서도 실제로 유의미한 사용을 만들어내는 활성화 병원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 그리고 이 흐름을 BM으로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이런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특히 병원 접수·예약의 경험을 좋게 만들려면 1차 EMR이라는 특수한 시스템과 연결되어야 했고, 병원의 운영 방식과도 맞물려야 했고, 유저 입장에서는 가서 기다리는 것보다 앱을 통해서 하는게 “정말 좋다”라는 경험까지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병원/유저 획득 비용이 발생되기에 언젠가는 유저와 병원 중 어느 사이드에서든 수익을 만들어야한다는 고민은 많았습니다. 다만 당시에는 유저 멤버십에 대한 고민을 해본 적은 없었습니다. 트래픽에서 매출로 연결되는 다른 퍼널이 존재했고, 시장의 분위기상 성장과 커버리지 확대가 더 중요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굿닥을 나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똑닥에서 유료화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꽤 놀랐고 호기심이 들었습니다.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에서 비급여 광고 외 돈을 버는 서비스 업체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정말 잘되기를 바랐고, 결과적으로 지금은 유료 멤버십이 자연스러운 상황이 된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도 병원 접수·예약이라는 문제를 볼 때, 이 사업이 서비스 사업에 가까운 Pull 전략이어야 하는지, 인프라 사업에 가까운 Push 전략이어야 하는지 고민이 됩니다. 유저가 먼저 찾고 선택하게 만드는 완결된 경험을 통해 천천히 파이를 키우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조금 불편하더라도 병원과 유저가 반드시 쓰게 만드는 구조를 통해 커버리지를 빠르게 넓히는 것이 맞는지.
하지만 비브로스가 지나온 시점을 보면, 완결성 있는 사용자 경험 위에서 수익화를 만들어낸 것이 정말 중요한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배경이 있어서인지 저한테는 『B밀의숲』 이 기록 그 이상의 글 이였습니다.
챕터 1은 똑닥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유료 멤버십을 만드는 과정에서의 고민과, 그 시점의 조직 운영을 위한 의사결정들을 담고 있었습니다.
챕터 2는 대표님이 회사를 떠난 뒤 다시 돌아와 재정비하는 과정이 중심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지금 AI 시대를 대하는 대표님의 커뮤니케이션과 의사결정 방식도 궁금해서, 다음 챕터가 꼭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챕터 1은 "회사는 왜 돈을 벌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하는데,
- 어떤 목적으로 목표를 설정하는지.
- 그 목표가 달성되면 회사와 구성원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 그리고 왜 지금 이 결정을 해야 하는지.
그 과정을 굉장히 담백하고 논리적으로 풀어냅니다.
실제로도 이런 톤으로 커뮤니케이션하시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글에서는 감정적인 표현이나 형용사가 거의 없었습니다. 현상, 과정, 생각, 결과를 차분하게 나누고, 구성원들이 왜 이 방향을 이해해야 하는지를 설명합니다.
(제가 요즘 고민하는 지점에 추구하는 문체와 커뮤니케이션 방식으로 설명되어 있어서 더욱 공감하면서 읽고 배웠습니다.)
읽으면서 기억에 남은 부분들이 몇 가지 있었는데,
- 회사의 방향성을 모두가 같은 깊이로 이해하고 공감하기는 어렵다는 점
- 회사의 방향성을 깊게 공감하는 구성원은 항상 많지 않기에 결국 일에 몰입하고, 일에서 도파민을 경험해본 사람들을 모으거나 만들어야 한다는 점
- 방향성이 자주 바뀌는 것에 대한 설명으로 금리가 바뀌면 대출이나 주택 구입 계획도 달라지는 것처럼, 회사도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방향을 조정해야 한다는 것
- 이 부분에 많이 공감했는데, 방향성이나 맥락이 바뀔 때 이를 스위칭하는 데 어려움이 큰 구성원은, 어쩌면 몰입도가 낮기 때문에 전환 비용을 더 크게 느끼는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옳은 결정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하나의 실패를 지나치게 의식할 필요는 없다는 것. 치명적인 실패가 아니라면 발생한 문제는 대응하면 된다는 것.
- 불안한 감정은 성공 확률과 크게 관련이 없지만, 불안하다는 이유로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은 괜찮지 않다는 것.
가장 많이 공감했던 부분은
- 가장 중요한 것은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는 것이고, 거기에는 아무런 감정이 실리지 않는다는 점. 일을 하다 보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보다 “그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 더 중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일을 성공시키는 것과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것을 동시에 해내는 일은 매우 어렵습니다.
결국 『B밀의숲』 챕터 1은 똑닥의 유료 멤버십을 만들어 나가는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회사가 왜 돈을 벌어야 하는가”를 구성원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에 대한 기록으로 읽었습니다.
성장은 모두가 좋아하는 단어이지만, 수익화, 매출은 종종 불편한 단어가 됩니다.
특히 의료처럼 공공성과 민감도가 높은 도메인에서는 더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회사/서비스가 계속 존재하려면 돈을 벌어야 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는 누군가에게 명확한 가치를 제공해야 하는데, 비브로스가 그 어려운 질문에 어떤 방식으로 답했는지 엿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똑닥이 앞으로 병원 접수·예약이라는 문제를 어디까지 다시 정의할 수 있을지.
응원하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