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대한민국 개원의 위기: 9,300억 원이 증발하는 이유
들어가며
"이번엔 진짜 다르다"는 말을 쉽게 믿지 않는 편입니다. 의료계는 지난 수십 년간 수많은 정책 변화를 겪어왔고, 그때마다 "개원의 위기"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적응하고 버텨왔습니다. 그래서 밖에서 '대한민국 개원의 위기론'을 처음 들었을 때도, 솔직히 과장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숫자와 정책 내용을 들여다보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실손보험 자기부담률이 20%에서 95%로 상승하고, 검체검사 수가 배분이 7:3에서 1:9로 역전되며, 의원당 연간 순이익이 3,000만 원에서 6,000만 원씩 감소한다는 전망. 이것은 단순한 정책 조정이 아니라 수익 구조 자체가 근본적으로 바뀌는 변화입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2026년 4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이 글은 냉혹한 숫자가 말하는 진실을 정리하고, 앞으로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함께 생각해보기 위한 글입니다. 위기를 맞닥뜨렸을 때, 먼저 준비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생각보다 큽니다.
(1) 실손보험 5세대: 비급여 수익 모델의 변화
💡 핵심: 2026년 4월 출시되는 5세대 실손보험은 비급여 자기부담률을 20~30%에서 최대 95%로 상승시킵니다. 도수치료, 체외충격파, 일부 주사 치료 등 의원급의 주요 비급여 수익원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됩니다.
변화의 시작: 왜 지금인가
실손보험 개편 논의는 사실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2017년부터 실손보험의 적자가 누적되면서, 보험업계와 정부는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표명해왔습니다. 특히 비급여 항목의 급격한 증가와 일부 항목에서의 과다 청구 문제가 반복적으로 지적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 2026년에 이렇게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는 걸까요?
첫째, 실손보험 적자 규모가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2023년 기준 실손보험 손해율은 130%를 넘어섰고, 이는 보험사들이 받은 보험료보다 30% 더 많은 돈을 지급했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구조로는 상품 자체가 유지되기 어렵습니다.
둘째, 필수의료 강화라는 정부 정책 기조와 맞물렸습니다. 정부는 중증·응급 의료에 집중하고, 비필수적이라고 판단되는 항목들은 개인이 선택적으로 부담하도록 유도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설정했습니다. 5세대 실손보험은 이런 큰 그림 속에서 설계된 것입니다.
셋째, 공단이 돈이 없습니다. 고령화로 인해 의료비 지출은 계속 증가하는데, 기존 방식으로는 정부가 장기적으로 버티기 어렵다는 판단이 선 것입니다.
숫자로 보는 변화
구체적인 변화를 숫자로 살펴보겠습니다.
기존 4세대 실손보험에서 환자는 비급여 항목에 대해 대략 20 ~ 30%만 부담했습니다. 예를 들어 도수치료 1회 비용이 10만 원이라면, 환자는 2만 원에서 3만 원 정도만 내면 됐습니다. 나머지 7만 ~ 8만 원은 보험사가 부담했습니다. 환자 입장에서는 큰 부담 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었고, 이것이 의원의 안정적인 수익원으로 작동했습니다.
2026년 4월, 5세대 실손보험이 출시되면 이 구조가 완전히 바뀝니다. 특정 비급여 항목들은 "관리급여"로 분류되어 자기부담률이 최대 95%까지 상승합니다. 같은 도수치료를 받으려면 환자가 9만 5,000원을 직접 내야 합니다. 보험사는 겨우 5,000원만 부담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관리급여"라는 이름으로 포장했지만, 실질적으로는 보장에서 거의 제외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건강보험에서 5%를 부담한다는 것은 명목상의 보장일 뿐, 환자가 체감하는 혜택은 거의 없습니다.
영향을 받는 주요 진료 영역
어떤 항목들이 영향을 받을까요? 의원급 비급여 수익의 핵심이었던 몇 가지 영역을 살펴보겠습니다.
도수치료와 체외충격파
정형외과, 재활의학과, 통증의학과의 주요 수익원이었던 도수치료와 체외충격파가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5세대 실손에서 이 항목들은 자기부담률 90~95%로 분류되거나, 아예 보장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 정형외과 원장의 말을 빌리면, "지금은 환자들이 어깨 통증이나 허리 통증으로 오면 큰 고민 없이 도수치료를 권할 수 있습니다. 환자 부담이 크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2026년부터는 환자에게 '10만 원 중 9만 5,000원은 본인이 내셔야 합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과연 얼마나 많은 환자가 그래도 치료를 받겠다고 할까요?"
실제로 환자 입장에서 10만 원짜리 치료를 받기 위해 9만 5,000원을 내야 한다면, 차라리 치료를 포기하거나 더 저렴한 대안을 찾으려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부 주사 치료와 시술
통증 완화나 관절 치료 목적의 일부 주사 치료들도 영향을 받습니다. 기존에는 치료 목적이라는 명분으로 실손보험 청구가 가능했던 항목들이, 5세대에서는 보장 범위에서 제외되거나 자기부담률이 크게 상승할 전망입니다.
특히 미용 목적이 조금이라도 포함될 수 있는 시술들은 더욱 엄격하게 관리됩니다. 보톡스나 필러 같은 경우, 과거에는 일부 통증 완화 목적으로 실손 청구가 가능한 경우가 있었지만, 앞으로는 명확히 선을 긋겠다는 것이 정부와 보험사의 입장입니다.
기능의학 관련 검사와 영양 처방
기능의학 클리닉이 주로 활용하던 영역도 상당한 변화를 맞이할 것으로 보입니다. 정밀 혈액검사, 유전자 검사, 중금속 검사, 맞춤형 영양제 처방 등이 해당됩니다.
이런 항목들은 5세대 실손에서 "필수 의료"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보장 범위에서 대폭 축소되거나 아예 제외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기능의학 클리닉을 운영하는 한 원장은 "우리 클리닉 매출의 40% 정도가 이런 검사와 영양 처방에서 나오는데, 2026년부터는 환자들이 전액 부담해야 한다면 과연 지금처럼 부담 없이 받을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합니다.
왜 이런 변화가 일어나는가
보건당국의 공식적인 입장은 명확합니다. "과잉진료 예방과 필수의료 강화." 일견 합리적으로 들립니다. 실제로 일부 비급여 항목에서 과다 청구나 불필요한 시술이 문제가 된 사례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관리급여로 지정하면서 건강보험 부담은 5%에 불과하다는 점입니다. 진정으로 국민 건강을 위해 필요한 항목이라면, 건강보험 부담을 30~50% 수준으로 설정해야 의미 있는 "관리"가 되지 않을까요? 그런데 5%라는 숫자는 사실상 "우리는 형식적으로 보장한다"는 명분만 취한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로는 건강보험 재정 부담을 최소화하면서도, "우리가 관리하고 있다"는 명분을 확보하기 위한 구조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개원의에게 남는 선택지
그렇다면 개원의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첫 번째 선택지는 급여 항목 중심으로 수익 구조를 재편하는 것입니다.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는 진료에 집중하고, 만성질환 관리나 예방 중심의 진료 모델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수가는 낮지만 안정적이고, 환자 부담이 적어 꾸준한 수요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선택지는 완전 자비 진료로 전환하되, 환자에게 명확한 가치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보험과 완전히 결별하고 프리미엄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델입니다. 이 경우 환자가 기꺼이 비용을 지불할 만큼 차별화된 경험과 결과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세 번째는 하이브리드 모델입니다. 기본 진료는 급여 중심으로 운영하되, 선택적으로 프리미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다만 이 경우 환자에게 선택지를 명확히 설명하고, 비급여 항목에 대한 가치를 충분히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기존처럼 실손보험에 기대어 비급여로 수익을 올리던 모델은 2026년부터 작동하기 어려워진다는 점입니다. 변화에 미리 대비하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
(2) 검체검사 수가 구조 변화: 9,300억 원의 이동
💡 핵심: 2026년 상반기부터 검체검사 위탁관리료가 폐지되고, 수가 배분 비율이 7:3에서 1:9 수준으로 변경됩니다. 의원급 전체가 연간 약 9,300억 원의 수익 감소를 겪을 것으로 추산되며, 이는 개별 의원당 연간 3,000만~6,000만 원의 순이익 감소에 해당합니다.
기존 검사 수익 구조는 어떻게 작동했나
많은 개원의에게 검체검사는 단순한 "검사"가 아니었습니다.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수익원이었습니다.
기존 시스템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환자가 의원에 오면 의사는 필요에 따라 혈액검사를 처방합니다. 간호사가 채혈을 하고, 검체를 전문 검사센터에 보냅니다. 검사센터는 고가의 장비와 전문 인력으로 검사를 수행하고, 결과를 의원에 보냅니다. 의사는 그 결과를 해석하고 환자에게 설명합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가는 의원과 검사센터가 나눠 가졌습니다. 관행적으로 의원 7:검사센터 3, 또는 의원 6:검사센터 4 정도의 비율이었습니다. 실제 검사를 수행한 곳은 검사센터인데, 의원이 수가의 60~70%를 가져갔던 것입니다.
여기에 더해 의원은 "검체검사 위탁관리료"라는 별도의 수가를 청구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검체를 적절히 채취하고 보관하고 운송한 것에 대한 대가라는 명목이었습니다.
한 내과 원장의 말을 빌리면, "검사 장비에 수억 원을 투자하지 않아도, 검사센터와 협력만으로 안정적인 검사 수익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채혈만 잘하면 됐으니까요. 이것이 개원의의 중요한 수익 기반 중 하나였습니다."
2026년, 게임의 룰이 완전히 바뀐다
정부는 이 구조가 합리적이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실제로 검사를 수행하는 검사센터가 30%만 가져가고, 단순히 채혈만 한 의원이 70%를 가져가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지적입니다. 검사센터는 수억 원의 장비에 투자하고, 전문 검사인력을 고용하고, 정도 관리를 하고, 24시간 운영 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반면 의원은 채혈과 검체 관리만 담당합니다. 이 노력과 투자의 차이를 고려하면, 현재의 7:3 배분은 불균형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부는 2026년 상반기부터 두 가지 큰 변화를 추진합니다.
첫째, 검체검사 위탁관리료를 폐지합니다. 의원이 추가로 받던 관리료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둘째, 수가 배분 비율을 의원 1:검사센터 9 수준으로 역전시킵니다. 이제 의원은 전체 수가의 10% 정도만 가져가고, 검사센터가 90%를 가져가게 됩니다.
숫자로 보는 영향
이 변화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까요? 대한의사협회의 분석에 따르면, 의원급 전체가 연간 약 9,300억 원의 수익 감소를 겪을 것으로 추산됩니다.
전국 의원이 약 3만 개소라고 가정하면, 개별 의원당 평균 약 3,100만 원의 수익 감소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평균치일 뿐이고, 실제로는 검사를 많이 하는 의원일수록 타격이 큽니다. 내과, 가정의학과처럼 검사 비중이 높은 의원은 연간 3,000만~6,000만 원의 순이익 감소를 겪을 수 있습니다.
한 가정의학과 원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의원은 월평균 검사 수익이 500만 원 정도 됩니다. 연간 6,000만 원이죠. 배분 비율이 바뀌면 이 중 70 ~ 80%가 사라진다고 보면 됩니다. 연간 4,000 ~ 5,000만 원 손실입니다. 순이익으로 따지면 정말 큰 금액이에요."
영상검사도 압박을 받는다
검체검사만이 아닙니다. 영상검사도 새로운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2025년부터 CT, MRI 등 영상검사에 대한 적정성 평가가 처음으로 도입됩니다. 지금까지 영상검사는 건강보험 급여 항목이면서도 비교적 자유롭게 청구할 수 있었습니다.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처방하고, 청구하면 됐습니다.
하지만 이제 평가가 시작됩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각 의료기관의 영상검사 건수, 적응증, 패턴 등을 분석합니다. 과다 청구나 불필요한 검사로 판정되면 수가가 하향 조정되거나 패널티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한 정형외과 원장의 우려를 들어보겠습니다. "무릎 통증 환자가 오면 MRI를 찍어야 정확한 진단이 가능한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 환자에게 정말 MRI가 필요했는가'를 심평원이 판단하게 됩니다. 보수적으로 접근하면 진단 정확도가 떨어지고, 적극적으로 검사하면 과다 청구로 찍힐 수 있습니다. 딜레마입니다."
신의료기술 평가 유예 제도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검사 기술이 나오면 일정 기간 평가를 유예해주고 비급여로 자유롭게 청구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 기준이 엄격해집니다. 비급여 검사 항목 자체가 줄어드는 것입니다.
의원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검사 수익이 대폭 감소한다면, 의원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첫 번째 옵션은 검사 장비에 직접 투자하는 것입니다. 혈액분석기, 생화학 분석기, 초음파, 엑스레이 정도는 개원의도 투자할 수 있는 범위입니다. 자체 장비로 검사를 수행하면 수가 전체를 가져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CT, MRI 같은 고가 장비는 투자 비용이 수억 원에 달하고, 유지보수 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검사 수요가 충분히 많지 않으면 투자 대비 효율이 맞지 않습니다. 고급 유전자 검사나 정밀 병리 검사는 아예 개원의 수준에서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두 번째 옵션은 검사 의존도를 낮추는 것입니다. 검사 없이도 충분히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는 영역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문진과 신체 검사,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진단 역량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한 내과 원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실 모든 환자에게 검사가 필요한 건 아닙니다. 경험이 쌓이면 문진과 진찰만으로도 상당 부분 파악이 가능합니다. 검사는 확인 차원이거나, 정말 필요한 경우로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이번 기회에 진료 본질로 돌아가는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세 번째 옵션은 상담과 케어 중심 모델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검사 수익이 줄어드는 대신, 환자와의 상담 시간을 늘리고, 생활습관 관리, 예방 관리, 만성질환 관리 등으로 가치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이런 서비스는 검사 장비가 필요 없지만, 환자에게는 큰 도움이 됩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 분명한 것은 기존처럼 검사센터에 위탁하면서 높은 수가를 가져가던 모델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수탁검사 업체들의 영업 사원들은 밖에 내몰리기 시작했습니다.
(3) AI와 환자: 전문성의 역설
💡 핵심: 환자의 AI 활용이 급증하면서 진료실에서 의사-환자 갈등이 새로운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AI가 알려주는 의료적 지식은 제한적이지만 환자들은 높은 신뢰를 보입니다. 의사의 전문성은 존중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결국, 소통 방식의 근본적인 변화가 요구되고 있습니다.
진료실에 들어온 ChatGPT
요즘 진료실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여러 원장님들로부터 듣습니다.
환자가 진료실에 들어오면서 "제가 ChatGPT로 검색해봤는데요..."라고 말문을 엽니다. 자신의 증상을 AI에 입력했고, AI는 가능한 병명 3가지를 제시했으며, 각각에 대한 치료법과 필요한 검사까지 알려줬다고 합니다. 그리고 의사에게 묻습니다. "제가 이 검사를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한 내과 원장의 경험담입니다. "40대 여성 환자가 피로감을 호소하며 왔습니다. 진찰도 하기 전에 '제가 ChatGPT에 물어봤는데, 갑상선 기능 저하증, 빈혈, 또는 우울증일 수 있대요. 갑상선 검사랑 철분 수치 검사 해주세요'라고 하더군요. 저는 진찰을 하고 싶었는데, 환자는 이미 자기 진단을 끝낸 상태였습니다."
처음에는 당황스럽습니다. 의사의 진단도 듣기 전에 환자가 이미 스스로 진단을 내리고 치료 계획까지 세워온 것입니다. 의사가 다른 견해를 제시하면, 환자는 "그런데 AI는 이렇게 말했는데요?"라며 반박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개별 사례가 아니다
이런 경험은 특정 의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전국 진료실에서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2024년 말 ChatGPT를 비롯한 생성형 AI가 대중화되면서, 건강 관련 질문을 AI에게 하는 사람들이 급증했습니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병원에 가기 전에 먼저 AI에게 증상을 물어보는 것이 자연스러워졌습니다.
문제는 AI가 제공하는 정보의 질입니다. AI는 방대한 의학 논문과 건강 정보를 학습했기 때문에, 겉보기에는 그럴듯한 답변을 내놓습니다. 전문 용어도 사용하고, 여러 가능성을 나열하고, 각각에 대한 설명도 제공합니다. 환자 입장에서는 "AI가 이렇게 자세히 알려주네?"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큰 함정이 있습니다.
AI의 정확도는 어디에?
국내 대학교 의과대학 연구팀이 ChatGPT와 같은 AI 모델의 의료 정보 정확도를 분석한 결과가 있습니다. 결론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거나 불완전하다는 의미입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AI는 방대한 텍스트 데이터를 학습했지만, 실제 환자를 진찰한 경험은 없습니다. 환자의 개별적 상태, 복합적 요인, 기저질환, 복용 중인 약물, 생활습관, 가족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지 못합니다. 단순히 텍스트 패턴을 학습한 모델일 뿐입니다.
한 가정의학과 원장의 설명입니다. "예를 들어 환자가 '머리가 아파요'라고 AI에게 물으면, AI는 편두통, 긴장성 두통, 고혈압, 뇌종양 등 수십 가지 가능성을 나열합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 환자에게 '가장 가능성 높은 것'을 판단하지는 못합니다. 그건 진찰을 해봐야 알 수 있는 것이거든요."
더 큰 문제는 AI가 드문 질환이나 심각한 질환도 똑같은 확률로 제시한다는 점입니다. 단순 두통 환자에게 "뇌종양일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면, 환자는 불안해집니다. 그리고 "뇌 MRI를 찍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라고 요구합니다.
그런데 환자는 AI를 믿는다
정확도가 절반 정도밖에 안 되는데, 환자들은 왜 AI를 믿을까요?
첫째, AI는 항상 친절하고 자세합니다. 환자가 묻는 모든 질문에 긴 답변을 내놓고, 추가 질문도 받아줍니다. 진료실에서 의사에게 2분 동안 설명을 듣는 것과 달리, AI는 시간 제약 없이 대화할 수 있습니다.
둘째, AI는 판단하지 않습니다. 환자가 "제 증상이 별거 아닌가요?"라고 물어도, AI는 "괜찮다"고 단정하지 않고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고 여러 가능성을 열어둡니다. 환자는 자신의 불안이 무시받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셋째, 확증 편향이 작동합니다. 환자가 이미 "나는 갑상선 문제가 있을 것 같아"라고 생각하고 AI에게 물으면, AI는 그 가능성을 포함한 여러 답변을 내놓습니다. 환자는 "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라고 확신하게 됩니다.
한 정신건강의학과 원장의 경험입니다. "불안장애 환자가 자신의 신체 증상을 AI에 물어보고, AI가 '심장 질환일 수 있다'고 답하자, 환자는 확신을 갖고 심장내과에 갔습니다. 심장내과에서 정밀 검사를 했지만 아무 이상이 없었죠. 그런데 환자는 '검사가 잘못됐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더군요. AI를 더 믿는 겁니다."
의사의 입지가 정말 좁아지는가?
그렇다면 AI 때문에 의사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의사의 전문성 자체는 여전히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습니다.
AI는 환자를 직접 진찰하지 못합니다. 신체 검사를 하지 못하고, 눈빛이나 목소리, 걸음걸이 같은 비언어적 신호를 읽지 못합니다. 임상 경험도 없고, 비슷한 사례를 직접 치료해본 적도 없습니다. 복합적이고 애매한 상황에서 "이게 진짜 문제다"를 찾아내는 직관도 없습니다.
한 내과 원장의 말입니다. "AI는 교과서적인 답변을 합니다. 하지만 실제 환자는 교과서와 다릅니다. 두세 가지 증상이 복합적으로 나타나고, 어떤 증상이 주된 것이고 어떤 것이 부수적인 것인지 구분해야 합니다. 이건 경험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문제가 없는 걸까요? 아닙니다. 문제는 의사-환자 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했다는 점입니다.
변화한 의사-환자 관계
과거에는 의사가 진단하고 설명하면, 환자가 믿고 따랐습니다. 신뢰가 전제되어 있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그러시니까 맞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다릅니다. 환자는 의사의 진단을 AI와 비교합니다. "AI는 이 검사가 필요하다고 했는데, 왜 선생님은 필요 없다고 하시나요?" 환자는 의사에게 근거를 요구하고, 설명을 요구하고, 때로는 "AI가 틀릴 리 없다"며 의사의 판단을 의심합니다.
의사는 자신의 판단을 설명하고, 근거를 제시하고, AI가 왜 틀렸는지 논리적으로 반박해야 합니다. 소통 비용이 크게 증가한 것입니다.
한 이비인후과 원장의 하소연입니다. "예전에는 '이건 단순 비염이니 약 드시면 됩니다' 한마디면 끝났습니다. 이제는 '왜 CT를 안 찍나요? AI는 부비동염 가능성도 있다고 했는데요'라는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환자 한 명당 진료 시간이 두 배로 늘어났습니다."
문제는 진료 시간이 한정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환자 한 명당 5~10분 진료가 현실인 한국 의료 시스템에서, 그 짧은 시간에 AI 정보를 반박하고 환자를 설득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결국 의사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시간을 들여 설명할 것인가, 아니면 환자가 원하는 검사를 그냥 처방할 것인가. 전자는 진료가 밀리고, 후자는 불필요한 의료비가 발생합니다.
새로운 과제: 신뢰의 재정립
AI 시대에 의사가 마주한 가장 큰 과제는 환자와의 신뢰를 어떻게 재정립하느냐입니다.
첫 번째 접근은 AI를 적으로 보지 않고 대화의 시작점으로 활용하는 것입니다. 환자가 AI 정보를 가져왔다면, 그것을 무시하거나 일축하지 않습니다. "네, 그 정보 저도 봤습니다. 이 부분은 맞는데, 선생님의 경우는 이런 점이 다릅니다"라고 대화를 시작합니다.
한 가정의학과 원장의 경험입니다. "환자가 ChatGPT 답변을 프린트해서 들고 왔더군요. 처음엔 당황했는데, 그걸 함께 보면서 '여기 나온 것 중에서 선생님한테 해당되는 건 이것이고, 해당 안 되는 건 이겁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환자가 오히려 '아, 선생님이 더 자세히 봐주시네요'라며 만족하더군요."
두 번째는 설명 능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이 약 드세요"만으로 충분했습니다. 이제는 "왜 이 약인지, 다른 선택지는 무엇인지, AI가 추천한 것과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해야 합니다. 설명하지 못하면 환자는 AI를 더 믿습니다.
세 번째는 시간 확보입니다. 2분 진료로는 불가능합니다. 진료 시간을 늘리거나, 예약 환자 수를 줄이거나, 비대면 사후 상담을 병행하는 등의 구조 변화가 필요합니다.
한 피부과 원장은 이렇게 대응했다고 합니다. "초진 환자는 30분 예약제로 바꿨습니다. 충분히 상담하고, 치료 계획을 설명하고, 질문을 받습니다. 환자 수는 줄었지만, 만족도는 높아졌고, 재방문율도 올랐습니다. 결국 매출은 비슷하게 유지됩니다."
AI가 의사를 대체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의사가 환자와 소통하는 방식은 완전히 바뀌어야 합니다. 이것을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의사와 그렇지 않은 의사 사이의 차이는, 앞으로 더욱 벌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4) 살아남는 개원의의 전략
💡 핵심: 실손보험 축소, 검사 수익 감소, AI 환자 급증이라는 3중 변화 속에서 안정적으로 운영하려면 수익 구조 재편, 가치 기반 진료 전환, 신뢰 재정립이 필요합니다. 변화를 먼저 준비하는 것이 중요해 보입니다.
수익 구조를 재편하는 세 가지 방향
2026년부터는 비급여와 검사에 의존하던 기존 수익 모델이 작동하기 어려워집니다. 새로운 방향을 고민해야 할 시점입니다.
급여 항목 중심 모델
첫 번째 방향은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는 진료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만성질환 관리, 예방접종, 건강검진, 기본 진료 등이 해당됩니다.
장점은 안정성입니다. 환자 부담이 적어 꾸준한 수요가 있고, 수가가 정해져 있어 예측 가능합니다. 실손보험이나 정책 변화에 영향을 덜 받습니다.
단점은 마진이 낮다는 점입니다. 높은 수익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따라서 효율을 극대화하거나 환자 수를 늘리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한 가정의학과 원장의 사례입니다. "비급여 비중을 줄이고 만성질환 관리에 집중했습니다.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환자를 꾸준히 관리하고, 정기 검진을 철저히 하고, 생활습관 코칭을 제공합니다. 한 명당 수익은 적지만, 환자 수가 많고 재방문율이 높아서 안정적입니다."
완전 자비 진료 모델
두 번째 방향은 보험과 완전히 결별하고, 환자가 전액 부담하는 프리미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기능의학, 항노화 클리닉, 맞춤형 건강관리, 통합의학 등이 여기 해당됩니다. 보험 청구를 하지 않으니 수가 제약이 없고, 환자당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델이 성공하려면 명확한 가치를 입증해야 합니다. 환자가 비용을 기꺼이 지불할 만큼 차별화된 경험과 결과를 제공해야 합니다.
한 항노화 클리닉 원장의 말입니다. "우리 클리닉은 보험을 전혀 사용하지 않습니다. 대신 정밀 검사, 개인 맞춤 영양 계획, 운동 처방, 정기 모니터링을 패키지로 제공합니다. 1년 프로그램이 500만~1,000만 원이지만, 환자들은 만족합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건강 지표가 개선되니까요."
하이브리드 모델
세 번째는 기본 진료는 급여 중심으로 하되, 선택적으로 프리미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기본 진료와 만성질환 관리는 보험으로 하고, 심화 상담이나 생활습관 코칭, 맞춤형 영양 프로그램 등은 자비로 제공하는 방식입니다.
이 경우 환자에게 선택지를 명확히 설명하고, 비급여 항목에 대한 가치를 충분히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강요"가 아니라 "선택"이 되어야 합니다.
가치 기반 진료로 전환하기
검사 수익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진료 자체가 가치가 되어야 합니다.
과거에는 "검사 많이 하는 의원"이 수익을 냈다면, 이제는 "검사 없이도 정확히 진단하고 효과적으로 치료하는 의원"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한 내과 원장의 경험입니다. "환자들이 '여기는 검사를 많이 안 시키는데도 병을 잘 찾아낸다'고 입소문을 냅니다. 문진과 진찰에 시간을 많이 들이고, 정말 필요한 검사만 최소한으로 합니다. 불필요한 검사 비용을 아끼면서도 정확한 진단을 받으니, 환자 만족도가 높습니다."
상담과 케어가 핵심이 됩니다. 환자와 충분히 대화하고, 생활습관을 파악하고, 맥락을 이해하고, 개인화된 조언을 제공합니다. 이것은 AI가 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공감이 차별화 포인트가 될 수 있습니다. AI는 데이터를 분석하지만, 인간은 공감합니다. 환자의 불안을 이해하고, 걱정을 들어주고, 함께 해결책을 찾아갑니다.
신뢰를 재정립하는 구체적 방법
AI 시대에 의사의 가장 큰 자산은 신뢰입니다. 어떻게 신뢰를 쌓을 수 있을까요?
환자의 질문을 환영하기
환자가 AI 정보를 가져오는 것을 위협으로 보지 않고, 관계를 깊게 만드는 기회로 삼을 수 있습니다. 환자의 질문에 진지하게 답하고, AI가 놓친 부분을 짚어주고, 함께 최선의 선택을 찾아갑니다.
한 소아청소년과 원장의 사례입니다. "젊은 부모들이 커뮤니티나 ChatGPT로 검색한 내용을 가져옵니다. 저는 그걸 함께 보면서 '이 부분은 맞고, 이 부분은 아기 개월 수를 고려하면 다르다'고 설명합니다. 부모들이 '역시 선생님께 물어보길 잘했다'며 안심합니다."
설명하는 습관 기르기
과거처럼 "이 약 드세요"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왜 이 약인지, 어떻게 작용하는지, 부작용은 무엇인지, 다른 선택지는 뭔지"를 설명하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시간이 더 걸리지만, 한 번 제대로 설명하면 환자는 신뢰하고, 재방문율이 높아집니다.
사후 관리 강화
진료가 끝났다고 관계가 끝나는 게 아닙니다. 비대면 상담, 카톡 상담, 정기 팔로우업 등을 활용해 환자와의 접점을 늘립니다.
한 정형외과 원장은 수술 환자에게 카톡으로 회복 과정을 확인하고 조언합니다. "수술 후 2주, 4주, 8주에 사진을 보내달라고 합니다. 그걸 보고 회복이 잘 되고 있는지 피드백을 줍니다. 환자들이 '병원에서 이렇게까지 챙겨주나' 하며 감동합니다."
진료 시간 확보
다시 말하지만, 2분 진료로는 신뢰를 쌓기 어렵습니다. 진료 시간을 늘리거나, 예약 환자 수를 조절하거나, 초진과 재진을 구분해서 초진에는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는 방식을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마치며: 2026년, 준비하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
2026년은 대한민국 개원의에게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실손보험 5세대로 비급여 수익 구조가 변하고, 검체검사 수가 개편으로 연간 9,300억 원의 수익 이동이 발생하며, AI 환자의 증가로 의사-환자 관계가 재정의되는 변화들이 동시에 일어납니다.
하지만 위기는 언제나 기회이기도 합니다. 변화를 먼저 받아들이고 준비한 개원의는 오히려 더 견고한 기반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급여 중심으로 전환하거나, 완전 자비 진료로 차별화하거나, 가치 기반 진료로 신뢰를 쌓는 등 다양한 선택지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시작하는 것입니다. 2026년 4월이 되어서 준비하면 늦을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차근차근 준비하는 개원의와 그렇지 않은 개원의 사이의 차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벌어질 것입니다.
도쿄에서 배운 것처럼, 이기려고 서두르기보다 망하지 않는 구조를 먼저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빠르게 크는 것보다, 오래 버티는 것이 더 가치 있을 수 있습니다.
2026년, 변화는 피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준비하느냐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이, 지금 이 순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