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은 공짜가 됐다: 이제 진짜 전쟁은 유통에서 시작된다

AI가 제품 개발 비용을 0으로 수렴시키고 있다. 하지만 더 싸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더 잘 팔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공급이 폭발하는 시대에 살아남는 기업은 제품이 아니라 유통을 가진 기업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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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22, 2026
제품은 공짜가 됐다: 이제 진짜 전쟁은 유통에서 시작된다

들어가며

"제품만 좋으면 팔린다"는 말을 아직도 믿는 창업자들이 있습니다.

솔직히 저도 한때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충분히 좋은 제품이라면 입소문이 나고,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올 것이라고. 하지만 시장을 들여다보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2025년 중순부터 2026년을 거치며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GitHub에는 하루에도 수천 개의 새로운 오픈소스 프로젝트가 올라옵니다. Product Hunt에는 매일 AI 도구 수십 개가 론칭됩니다. 앱스토어에는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 새로운 앱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출시 3개월 안에 조용히 사라집니다.

만들기가 쉬워졌는데, 왜 살아남는 제품은 더 적어질까요?

이것은 역설처럼 보이지만, 사실 논리적인 귀결입니다. 제품을 만드는 비용이 0에 수렴한다는 것은, 동시에 경쟁자가 나와 똑같은 제품을 만드는 비용도 0에 수렴한다는 의미입니다. 진입장벽이 사라지면 공급이 폭발하고, 공급이 폭발하면 제품 자체의 가치가 균등화됩니다.

이 상황에서 유일하게 남는 경쟁력 중 하나는 “누가 고객에게 먼저, 반복적으로 닿을 수 있느냐” 유통입니다.


(1) 제품 개발 비용의 붕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 핵심: AI가 코딩, 디자인, 카피라이팅, 데이터 분석을 대체하면서 스타트업의 초기 개발 비용이 2년 만에 90% 이상 감소했습니다. 과거에 5억이 필요했던 것이 이제 500만 원으로 가능합니다.

숫자가 말하는 현실

2024년, 앱을 하나 만들려면 어떤 과정이 필요했는지 떠올려 보겠습니다. 기획자 1명, 디자이너 1명, 프론트엔드 개발자 1명, 백엔드 개발자 1명. 최소한 4명의 팀이 6개월을 붙어야 MVP(최소 기능 제품)가 나왔습니다. 인건비만 잡아도 1억 원 이상입니다. 여기에 서버, 디자인 툴, 마케팅 비용을 더하면 초기 투자금은 쉽게 3~5억을 넘습니다.

2026년 현재, 상황이 근본적으로 달라졌습니다.

Claude나 Codex가 코드를 짜고, 직접 디자인 시안을 만들며, 개발 속도를 3~5배 높입니다. 혼자서, 또는 2인 팀이 3개월 만에 동일한 수준의 제품을 만들어냅니다. 비용은 최소 기능 제품만 생각한다면 백만 원 수준입니다.

Y Combinator의 최신 리포트에 따르면, 2024년 배치 스타트업의 평균 첫 제품 개발 비용은 2022년 대비 87% 감소했습니다. 국내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관찰됩니다. 팁스(TIPS) 프로그램에 지원하는 팀들의 사전 개발 결과물 수준이 2년 전과 비교해 눈에 띄게 높아졌다는 심사자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변화는 되돌릴 수 없다

AI 개발 도구의 성능은 앞으로도 계속 올라갑니다. 개발 비용이 0에 가까워지는 속도는 가팔라질 뿐, 둔화되지 않습니다. 2026년 하반기에는 지금보다 더 적은 비용으로, 더 짧은 시간에 동일한 품질의 제품을 만들 수 있게 됩니다. 2027년에는 또 그보다 더.

한 스타트업 창업자의 말입니다. "저는 작년에 개발자 없이 서비스를 만들었습니다. Claude로 백엔드를 짜고, v0으로 프론트엔드를 만들었습니다. 총 개발 비용은 약 50만 원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경쟁자도 같은 방식으로 일주일 만에 똑같이 만들더라는 겁니다."

여기에 역설이 있습니다. 만들기 쉬워질수록, 만드는 것 자체는 경쟁력이 되지 않습니다. 경쟁력은 그 이후에 있습니다.


(2) 공급 과잉의 시대: 왜 좋은 제품이 묻히는가

💡 핵심: 제품을 만드는 것이 쉬워지면서 모든 카테고리에서 공급 과잉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소비자의 선택지는 폭발했지만 주의력(Attention)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좋은 제품이 아니라 먼저 눈에 띈 제품이 시장을 가져갑니다.

소비자의 주의력은 유한하다

경제학에서 희소한 자원은 가격을 형성합니다. 제품의 공급이 폭발하면 제품의 가격은 하락합니다. 하지만 소비자의 주의력(Attention)은 어떨까요? 이것은 줄어들지 않습니다. 여전히 하루 24시간이고, 스마트폰을 보는 시간은 이미 한계에 가깝습니다.

공급은 늘어나는데 주의력은 고정되어 있다. 이 방정식이 뜻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소비자의 눈에 띄는 것 자체가 경쟁의 핵심이 됐습니다. 더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먼저 보이는 제품이 됩니다.

앱스토어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2023년 기준 전 세계 앱스토어에 등록된 앱은 550만 개입니다. 하루에 새로 등록되는 앱은 약 1,500개입니다. 반면 스마트폰 사용자가 한 달에 정기적으로 사용하는 앱은 평균 30개입니다. 나머지 540만 개는 존재하지만 사용되지 않습니다.

이 구조가 소프트웨어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쿠팡에 올라오는 신규 상품,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개설 수, 브랜드를 표방하는 유튜브 채널 수는 모두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좋은 제품"의 기준이 이동했다

2000년대에는 "좋은 제품"이란 성능이 뛰어난 제품이었습니다. 더 빠르고, 더 오래가고, 더 내구성 있는 제품. 그것이 차별점이었습니다.

2010년대에는 "경험이 좋은 제품"으로 이동했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으로 증명한 것처럼, 기능보다 사용 경험이 중요해졌습니다.

AI 시대에 "좋은 제품"의 기준은 다시 이동합니다. "내가 아는 제품." 소비자의 인식 속에 먼저 자리를 잡은 제품이 좋은 제품입니다. 아직 만나지 못한 뛰어난 제품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한 투자자의 표현을 빌리면, "이제 시장은 첫 번째 제품이 아니라 첫 번째 마케터에게 돌아갑니다."


(3) 유통이 곧 해자다: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가

💡 핵심: 제품의 진입장벽이 사라진 시대에 지속 가능한 경쟁 우위는 유통 채널에서 나옵니다. 고객에게 반복적으로 닿을 수 있는 채널, 즉 이메일 리스트, 커뮤니티, 리셀러 네트워크, 인플루언서 관계가 21세기의 땅입니다.

아마존이 이미 증명한 것

기업 분석 교과서에 자주 등장하는.. 식상할 수 있는 아마존. 아시는 것과 같이 수억 명의 고객이 아마존을 통해 검색하고, 아마존을 통해 구매하고, 아마존을 통해 리뷰를 남깁니다. 어떤 제조사가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도, 결국 아마존이라는 유통을 거쳐야 소비자에게 닿을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쿠팡이 같은 위치에 있습니다. 쿠팡은 모든 제품을 만들지 않지만, 어떤 제품이 얼마나 노출되고 얼마나 팔리는지를 결정합니다. 쿠팡에 없으면 많은 소비자에게 존재하지 않는 제품이 됩니다.

이것이 유통의 힘입니다. 제품이 아무리 뛰어나도 유통 없이는 닿지 않습니다.

21세기의 유통은 다르게 생겼다

플랫폼형 유통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AI 시대에 가장 강력한 유통은 "관계 기반 유통"입니다.

세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첫째, 오디언스 유통입니다. 이메일 구독자 리스트, SNS 팔로워, 유튜브 구독자, 커뮤니티 멤버십. 이것들은 내가 새로운 제품을 만들었을 때, 첫 번째로 알려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미국의 유명 투자자 Naval Ravikant는 이것을 "1,000명의 트루 팬"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당신의 것이라면 무엇이든 구매할 1,000명이 있다면, 어떤 제품을 만들어도 초기 수익이 보장됩니다.

한 국내 1인 크리에이터의 사례입니다. 디지털 마케팅 콘텐츠로 3만 명의 이메일 구독자를 보유한 그는, 처음 강의 상품을 출시했을 때 론칭 3일 만에 3,000만 원의 매출을 올렸습니다. 이전에 강의를 만들어본 적도 없었습니다. 오디언스가 먼저였고 제품이 나중이었습니다.

둘째, 파트너십 유통입니다. 내 제품을 대신 팔아줄 사람과 채널을 만드는 것입니다. B2B에서는 대리점이나 리셀러 네트워크, B2C에서는 인플루언서 어필리에이트 프로그램이 여기 해당합니다. 직접 고객에게 닿는 것이 아니라, 이미 고객과 신뢰 관계가 있는 중간자를 통해 닿는 방식입니다.

헬스케어 B2B 시장을 예로 들겠습니다. 새로운 의료기기나 헬스케어 솔루션을 개원의에게 직접 판매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미 원장들과 신뢰 관계를 맺고 있는 제약사 영업사원이나 의료기기 대리점이 그 제품을 함께 들고 들어가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옵니다. 제품이 같아도 유통 채널이 달라지면 성과가 달라집니다. 결국 CSO의 역할같은 것이죠.

셋째, 플랫폼 내 포지셔닝입니다. 아마존, 쿠팡, 네이버 쇼핑, 앱스토어, GPT 플러그인 마켓플레이스. 플랫폼을 피할 수는 없지만, 플랫폼 안에서도 전략이 있습니다. 검색 상위에 노출되는 방법, 리뷰를 쌓는 방법, 알고리즘이 선택하는 콘텐츠를 만드는 방법. 이것도 유통 전략입니다.

세일즈가 제품보다 먼저여야 한다

여기서 이제 창업자들에게 불편한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

제품을 만들기 전에 판매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아직 제품이 없을 때 예약판매를 받는 것, 랜딩페이지를 먼저 만들어 메일 리스트를 모으는 것, 잠재 고객 10명과 인터뷰하고 구매 의향을 확인하는 것이 제품 개발보다 먼저 이루어져야 합니다.

전통적인 사고방식은 "좋은 제품 → 마케팅 → 판매"입니다. AI 시대의 올바른 순서는 반대입니다. "잠재 고객 확보 → 판매 가능성 검증 → 제품 개발"입니다.

왜냐하면, 제품 개발 비용이 0에 가까워진 시대에 "좋은 제품을 만들면 팔린다"는 가설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좋은 제품은 넘쳐납니다. 이미. 지금.


(4) 살아남는 팀의 전략: 유통을 먼저 만드는 세 가지 방법

💡 핵심: 제품 개발 비용이 0에 수렴하는 세상에서 경쟁력은 유통에서 나옵니다. 오디언스를 먼저 만들고, 파트너십으로 확장하고, 특정 채널에서 지배력을 갖는 것이 살아남는 팀의 공통점입니다.

첫 번째: 오디언스를 제품보다 먼저 만들어라

가장 강력한 유통은 내가 소유한 오디언스입니다. 플랫폼 알고리즘이 바뀌어도, 광고비가 올라도, 경쟁자가 더 싼 제품을 내놓아도 내가 직접 연락할 수 있는 고객 리스트는 빼앗기지 않습니다.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콘텐츠입니다. 잠재 고객이 궁금해하는 정보를 꾸준히 발행하는 것입니다. 쇼츠, 뉴스레터, 유튜브 채널, 블로그, 팟캐스트. 형태는 다양하지만 원리는 같습니다. "내가 팔 제품의 잠재 고객이 매일 보는 콘텐츠"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 당장 돈이 안 된다고 느껴질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투자입니다. 오디언스 1만 명은 어떤 제품을 만들어도 초기 트랙션을 보장해주는 자산입니다. 그리고 이 자산은 경쟁자가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한 국내 B2B SaaS 창업자의 이야기입니다. "우리 팀은 서비스 개발과 동시에 업계 뉴스레터를 시작했습니다. 매주 관련 업계 뉴스를 정리하고 인사이트를 더해서 보냈습니다. 6개월 만에 구독자 3,000명이 됐고, 제품 출시 때 첫 100명의 유료 고객 중 70명이 뉴스레터 구독자였습니다. 제품 개발에 쓴 비용보다 뉴스레터에 쓴 시간이 더 가치 있었습니다."

두 번째: 나의 고객에게 이미 신뢰받는 사람을 파트너로 만들어라

처음부터 오디언스를 쌓을 시간이 없다면, 이미 오디언스를 가진 사람을 파트너로 만드는 것이 더 빠른 경로입니다.

B2B에서는 이것이 채널 세일즈 전략이 됩니다. 내 제품의 잠재 고객과 이미 거래하고 있는 회사나 개인을 찾아, 내 제품을 함께 팔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입니다. 커미션 구조, 리셀러 계약, 파트너 프로그램. 형태는 다양합니다.

B2C에서는 인플루언서 마케팅이 같은 원리입니다. 팔로워 100만 명의 매크로 인플루언서보다, 특정 카테고리에서 진짜 신뢰를 가진 나노 인플루언서가 실제 전환에는 더 효과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팔로워는 숫자지만 신뢰는 관계에서 나옵니다.

중요한 것은 파트너에게 "충분한 이유"를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돈(커미션)도 이유가 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내 제품이 파트너의 고객에게 진짜 가치를 준다는 것, 그리고 파트너가 내 제품을 소개함으로써 자신의 신뢰도가 올라간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세 번째: 하나의 채널에서 먼저 지배력을 가져라

"멀티채널 전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 유통 채널을 동시에 공략하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초기 단계에서 멀티채널은 함정입니다.

자원이 제한된 팀이 여러 채널을 동시에 공략하면, 모든 채널에서 평균 이하의 결과가 나옵니다. 차라리 하나의 채널에서 압도적인 포지션을 갖는 것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한 채널에서 1위가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먼저, 해당 채널의 알고리즘이 더 많이 노출해줍니다. 다음으로, 그 채널을 통해 들어온 고객이 입소문을 냅니다. 마지막으로, "○○ 하면 그 팀"이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자연 유입이 발생합니다.

네이버 쇼핑에서 특정 카테고리 1위, 유튜브에서 특정 키워드 상위 채널, 인스타그램에서 특정 해시태그의 대표 계정. 범위를 좁히고 깊이를 파는 것이 초기 전략입니다. 하나에서 지배력을 가지면, 그 자원으로 다음 채널을 공략합니다.


마치며: 만드는 시대에서 파는 시대로

AI는 지금 제품을 만드는 비용을 0으로 향해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이 변화는 멈추지 않습니다. 앞으로 2년, 5년 후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뛰어난 제품이 더 낮은 비용으로 쏟아져 나올 것입니다.

그 세상에서 "우리는 더 좋은 제품을 만들겠다"는 전략은 경쟁력을 잃습니다. 경쟁자도 똑같이 좋은 제품을, 똑같이 낮은 비용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남는 질문은 하나입니다. 누가 고객에게 먼저 닿고, 반복적으로 닿을 수 있는가.

오디언스를 먼저 쌓아둔 팀, 신뢰받는 파트너 네트워크를 만든 팀, 하나의 유통 채널에서 지배력을 가진 팀. 이들은 어떤 제품을 만들어도 팔 수 있는 구조를 갖게 됩니다. 그것이 AI 시대의 진짜 해자입니다.

제품은 공짜가 됩니다. 하지만 유통은 여전히 비쌉니다. 시간, 관계, 신뢰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AI가 빠르게 대체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지금 무엇을 만들지 고민하기 전에, 한번 물어보십시오. "나는 누구에게, 어떻게 닿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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